[일본의 아라시] 마츠모토 쥰 x 일본의 섬 사람들 ㅡ ③ (完)
오키의 역사를 알다
뜨겁고 뜨거운 밤 지나고(날이 밝아서), 잠에서 깨어나자, 밖은 무려 눈! 게다가 상당한 눈보라. 어제 스탭이 알아본 날씨예보에 의하면, 흐린 뒤 밤부터 아침에 걸쳐 눈. 그 후, 비로 변해 낮에는 맑음. 이라는, 마치 날씨 컬렉션과 같은 예보였습니다. 그 예보를 들었을 때는, 그렇기는 하지만, 그럴일은 없겠지 라고 얕잡아보고 있었지만, 제대로 들어맞았습니다. 라는 것은 염두한 푸른 하늘도 볼 수 있을지도. 그러나 3월도 끝이다라고 하는데도, 큰 눈이라니, 이것도 어느 의미, 마츠모토의 강한 힘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어젯밤의 열기도 아직 식지 않는 채, 다시 아오야마상과 합류. 민박으로 향해, 아마만의 아침을 먹습니다. 그곳은 아오야마상이 지금, 가장 깊숙히 있는 민박이라는 것. 공공사업에 동반한 수요에 기대는 것이 아니라, 한번 더 접대의 정신에 되돌아와 서비스를 다시 하려고 하는 아오야마상의 제안에, 가장 먼저 손을 내밀며, 합시다 라고 말해준 것이, 이 민박이라고 합니다.
호보미(保々見)라는 지구에 있어서, 야채는 자가제, 쌀은 섬의 것을 이용, 산나물도 자신들이 채집해, 정말로 본토(아마)의 것을 사용한 고장의 서비스를 하고 있습니다. 아직 한참 부족한 부분이 있지만, 함께 바꾸어가고 있기 때문에, 「꼭 체험 해주길 바란다」 라고, 어젯밤, 뜨겁게 이야기 해주었습니다.
사진(상좌) 민박의 할머니.
사진(상우) 바다에서도 산에서도 고장의 은혜가 가득.
사진(하) 완전히 편히 쉬는 마츠모토」
현관에 올라 바로 다다미방으로 들어가자, 이미 아침밥을 준비해주고 있었습니다. 일반적으로는 모자반(혼다와라)라고 불리는 해조인 진바, 첫번째지만 야로(노부키), 갓(카라시나), 그리고, 관동에서는 메지나라고 물리는 쿠로야라는 생선을 구운 것 등, 바다의 자비도, 땅의 자비도 마음껏 맛볼 수 있는, 참으로 호화로운 조식. 게다가, 곤약은 할머니 수제. 그리고 물론, 밥에 된장국(미소시루)도, 아침부터 행복합니다. 「곤약, 엄청 맛있네(こんにゃく、めちゃくちゃ美味しいね!)」. 어젯밤 늦게까지 이야기로 밤을 지내웠는데도, 마츠모토는 아침부터 활기차게, 된장국(미소시루)도 밥도 추가. 「제철 식재료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몇 번 와도 같은 메뉴는 한번도 없어요」 라는 아오야마상. 「아~, 맛있었어~!」라고 다 먹은 순간 마츠모토는 「……큰일이야~, 밥먹으니까 졸려졌어 (.….やっぺ~、飯食ったら眠くなってきた)」라고, 방 구석에 눕습니다. 할머니가, 모포와 베게까지 내어주셔서, 마치 친척집과 같은(웃음). 눈도 여전히 계속 내리고 있기 때문에, 잠시 민박에서 휴식하기로 합니다. 그런 마츠모토의 모습에 아오야마상은 「이런 곳에서 느긋하게 해주셨으면 했기 때문에 기쁘네요」. 확실히, 뭔가 확실히 좋은 그림이네요(웃음).
이 민박은, 쇼와 34년(1959년)에 이 집에 시집온 할머니가, 쇼와 46년(1971년)에, 스스로 하자고 생각해서 시작한 여관. 집이 컷던 것, 또, 남편이 돈을 벌러 섬 밖으로 나가있었던 것도 있고, 그 때는 아직 아이도 어려서 힘들었지만, 열심히 해보기로 했던 것 입니다. 향토의 것을 사용한 요리를 내는 것에는 처음부터 고집하고 있었던 것이지만, 아오야마상의 바람으로, 지금은 거기에 더 고민하고 있는 듯 합니다. 전일, 아오야마상의 제안으로 아마 명산품인 굴을 내어보았다는 할머니. 「자네(아오야마), 저 손님은 기쁘게(대접할게)」라고 기쁜 듯이 이야기하는 모습이 굉장히 인상적이었습니다. 아오야마상이 말하길, 현관에 장식되어있는 꽃도 할머니가 꽃꽂이 한 것으로, 들어보니, 「저쪽에 피어있는 꽃을 사용해 꽂았을 뿐이야」라는 할머니.
사진(상) 아마의 브랜드 굴은, 양식을 시작한 이래, 몇 번이나 도쿄의 츠키지 시장까지 직접 굴을 가지고 가서, 「이건 못써요」라고 들으면서 몇 번이나 개선을 한 것. 지금은 츠키지에서도 호평을 얻을 수 있게 되어, 약 4만개해서 시작해서, 지금은 30만개로. 내후년에는 50만개 출하에 도전한다고 한다.
사진(하) 이 굴이 맛있는 것은, 초여름부터 한여름에 들어가기 전, 3~5월의 시기, 자라는 수역의 온도가 13도에서 19도 전후의 때. 딱 좋은 제철의 시기에 여기에 올 수 있다니 럭키입니다.
그럭저럭하고 있는 사이에 눈이 그쳐, 점점 날씨가 좋아졌습니다. 오후 3시 페리로 본토에 돌아가지 않으면 안되는 마츠모토. 아마를 조금이라고 많이 체험하자고, 서둘러 출발을 합니다.
그리고 먼저 제일 처음으로 향한 곳은, 어젯밤 만족한, 아마쵸의 명산, 브랜드 굴의 가공장. 차를 내려 공장으로 향하는 도중, 해변을 따라 걷자, 갑자기 햇빛이 비쳐, 그것과 함께 해수면이 반짝반짝 빛나기 시작해, 한번에 물의 투명도가 높아져갑니다. 그 아름다움에, 마츠모토는 몇번이나 셔터를 누릅니다.
가공장의 오와키 야스노리(大脇安則)상에게 시설을 안내 받았습니다. 일본 명수백선에도 뽑힌 「텐가와의 물」이 흘러드는 호보미만의 해수는, 섬 안에서도 특히 투명도가 높아, 미네랄 함유도 풍부. 바다를 더럽히는 것이 되어버리는 먹이를 부릴 필요가 없다는 것. 그런 자연 그대로의 바다에서, 3년간 차분히 길러진 이와가키는, 영양가가 높아 더욱 맛있게 먹을 수 있는 때가 3~5월로, 봄부터 출하를 한다고 합니다.
사진(상좌) 자전거에 타려고 하자 급격히 다시 햇빛이 비쳐옵니다.
사진(상우) 지참한 물통에 텐가와의 물을 마십니다.
사진(하) 차에 올라타자마자 이야기를 들려주신 타키나카상.
가공장을 뒤로하고, 차에 올라타, 다음은 호보미만에 흘러든다고 하는, 아마의 명수, 텐가와의 물이 솟아나는 장소에. 차로 수분을 달리자, 확실히 환경청 선정 「일본명수백선」의 간판이 있었습니다. 나라시대, 행기(
계속해서 아오야마상이 안내해준 것은, 어제 이야기 꺼낸, 아마쵸의 토박이 안내인, 타키나카 시게루(滝中茂) 상(80세), 통칭 「타키나카 할아버지」의 집. 쾌활한 웃음의 타키나카 할아버지. 고토바죠코(後鳥羽上皇)연고지의 안내를 위해, 함께 차에 올라타자, 금방 할아버지의 이야기가 시작되었습니다. 마치 차내는 관광버스 같은.
「지금부터 가는, 자키라고하는 곳이 말이지, 말하자면 아마쵸의 역사의 발상지. 고토바죠코는 자키에 표착했으니까 말야. 고토바죠코는 현재의 미호노세키(美保関), 당시, 이즈모(出雲: 옛 지명, 지금 시마네현의 일부) 나라의 다이하마우라(大浜浦)라고 불린 곳 까지는 많은 병사에 둘러싸였지만, 미호노세키에서 여기까지 온 부인과 첩, 조정사람 등 합 6명이 옮겨왔어. 항해는 남풍으로 순풍만범(일이 모두 순조로움) 이었지만, 치부리의 섬과 나카노섬의 해협을 건널까 하는 때에 강한 북풍이 불어와 바다가 난폭해져, (배의) 키를 잡을 수 없게 되어 자키에 흘러 도착했지.」 타키나카상의 열의가 담긴 안내에 진지하게 귀를 기울이는 마츠모토. 「19년이라는 유폐의 생활을 어쩔 수 없이 한 죠코는, 1239년, 조요히 여기, 아마쵸의 흙이 된 것죠. 고토바죠코가 죽고 말이지, 약 백년 후, 고다이고텐노(後醍醐天皇)가 옆 섬 벳푸(別府)에 유배당해서 말이야……」. 그리고, 고다이고텐노의 이야기, 쿠스노키 마사시게(楠木正成)의 이야기로 이어져, 그 뒤로 사카모토 료마(坂本竜馬), 사이고 타카모리(西郷隆盛) 등 메이지 유신의 이야기까지 이르러, 드디어 이야기가 끝나려고 하는 때마침, 섬내 방송으로 정오를 알리는 음악이 흐릅니다. 설마 엔딩을 전하는 곡처럼. 대단한 말주변으로 오키의 역사를 전해준 타키나카상에게, 누구라고 할 것 없이 무심코 박수가 일었습니다. 마츠모토는 몇번이나 「감사합니다!」라고 인사를 하며, 헤어집니다.
토박이 안내인 타키나카 할아버지
타키나카 시게루의 아마 안내
사진(상) [미호 신사] 숙박을 청하는 것도 「황송합니다」 라며 계속 거절당한 코토바죠코의 일행이 그 날 밤을 지새웠던 신사.
사진(하좌) [키로카사키토다이(木路ヶ埼灯台)] 아마쵸 최남단의 땅. 바로 이 자키에 코토바죠코가 흘러 도착했다.
사진(하중) [걸터앉은 돌(御腰掛の石)] 오키로 쫓겨난 코토바죠코가 자키의 항에 표착. 부근의 민가에 재워달라고 숙박을 청했지만, 「죄송하다」며 계속 거절당했다, 그런 중간에 걸터앉았던 돌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이 부근의 촌락은 지금도 야도코이(宿乞; 숙박구걸)이라는 지명이 남아있다.
사진(하우) [고토바죠코가히(歌碑; 시가를 새긴 비) 미호신사의 경내에 있는, 당시는 이엉(으로 된)지붕의 산로(参篭)사에서 죠코는 쉬었다. 비가 내리고, 이엉과 이엉 사이에서 달님이 보이는 적막한 산로사에서 오키의 섬에 대해서 처음으로 노래를 읊은 것도 이곳. 그 비석이 남아있다. [시가 생략;;;]
날씨도 회복되고, 그 기세로 이번에는, 아오야마상이 아마에서 가장 마음에 든다 라고 하는 치치이(知々井) 곶에 데려가주었습니다. 이 곶은 옆에는 목장이 있고, 상당한 경사면에도 상관없이, 태평하게 보내고 있는 소의 모습이 굉장히 한가롭습니다. 아오야마상이 가장 좋아하는 장소라는 것도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치치이곶에서의 전망은 지금까지 돌아본 어느 장소보다도 멋지고, 눈 앞에 오키의 바다가 펼쳐지는, 틀림없는 절경 스팟이었습니다. 거기서 자전거를 타거나, 사진촬영을 하거나 하고, 잠시 느긋하게 보낸 후에, 슬슬 점심에. 히시우라항 가까이 있는, 이것도 아마가 자랑하는 브랜드 산물 「오키규(소)」를 먹을 수 있는 가게로. 거기에, 어제, 고교생들이 가르쳐준 무코야마상과 하타상 두 분을 아오야마상이 불러주고 있었던 것입니다.
오키규(소)
오키섬(아마쵸, 니시노시마쵸, 치부무라, 오키의 시마쵸) 에서 태어난 소가, 최종상품이 되기까지의 전부를 오키섬 내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시행하는 사육이 특징. 섬이라는 것을 살린 미네랄 량이 풍부한 오키에서 만든 사료를 먹고, 오키의 자연환경에서 자란 오키규는 도쿄의 시장에서도 높게 평가되고 있다.
사진 고교생들의 「히토츠나기를 보이지 않는 곳에서 떠받치는, 하타상(좌)과 무코야마상.」
히토츠나기(사람을 잇는 여행)을 뒤에서 지지하는 마을의 사람들.
*히토츠나기(ヒトツナギ)는 사람과 사람을 이어준다는 고교생들의 여행플랜 이름으로 어감을 살리기 위해 사람을 잇는 여행이라고 매번 번역, 언급하지 않고, 명사화하여 사용합니다.
마츠모토 : 굉장하네ㅡ, 이거. 맛있을 것 같아~!
하 타 : 맛있어요. 부드럽고. 저는, 오사카에서 일한적도 있지만, 섬에 돌아와서 이미 몇 십 년이 됩니다. 지난번, 이벤트를 도우며 오랜만에 도쿄에 갔는데, 굉장히 불편한 곳이네 라고 생각해서.
마츠모토 : 도쿄가 말인가요?
하 타 : 시오도메에 갔었는데, 뾰족한 식칼이 없어서, 스탭에게 「사올게요」라고 간 것은 좋았는데, 40분 정도 찾으러 돌아다녀서.
마츠모토 : 시오도메는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뾰족한 식칼은 긴자의 백화점 정도까지 가지 않으면 없지 않을까요.
하 타 : 시골은 조금만 저쪽에 있는 상점에 가면 무엇이든 있어서 말이죠.
무코야마 : 무슨 일이 있으면, 근처에 빌려달라고 얘기하면 빌려주고 말이죠.
마츠모토 : 아, 그런가, 그렇게 물건이 넘쳐나는데(웃음). 그렇군요. 우왓, 맛있어! 특히, 이 미스지, 깜짝 놀랄 정도로 맛있네. 이미, 아마는 뭐든 있네요. 생선도 맛있고, 고기도 맛있고, 그리고 밥도. 아침에 주셨는데, 정말 맛있었어요.
하 타 : 무코야마상은 쌀농사를 짓고 계세요.
마츠모토 : 오늘부터 학생들이 하는 히토츠나기에서 필요한 쌀을 전부 준비해주셨다고 하는.
무코야마 : 2, 3일전에, 그 아이들이 짊어지고 가져갔네.
하 타 : 이번에는 여러 가지 것을 (그들) 스스로 하지 않으면 안되니까, 무엇을 해야만 하는지 제대로 계획을 세워서 하지 않으면 큰일이이예요 라고. 자기들이 제대로 하지 않으면 잘 돌아가지 않으니까 말이죠. 그걸로 세세히 생각해보니 「이거, 큰일이다」라는 분위기가 되어서 말이지.
마츠모토 : 그래도, 확실히 여러 가지가 엉성하겠지 라고는 생각하지만, 그렇게 제대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 저는 대단하다고 생각했네요.
하 타 : 어른은 실패를 두려워하지만, 아이들은 그것을 두려워 하지 않아요. 굉장히 힘차게 나아가는 힘이 있네. 우리들은 말야, 두렵고 무서워서 기반을 단단히 다지고서 가려고 하지만. 그리고 말야, 니시노섬에서 타쿠히산(焼火山)이라고 하는 높은 산이 있어서 그 위에 타쿠히신사라는 사당이 있어요. 거기서는 바다의 신이 예전부터 섬겨지고 있어요. 꽤 험한 산이예요. 거기서 학생이 머문다라고 하는거예요. 거기에 열명에서 열 다섯 명 분 정도의 이불은 있지만, 그 이상은 없으니까, 그것을 메고 (산을) 오르지 않으면 안되. 힘들꺼야 라고 말했지만, 「할게요!」라고. 분명 짊어지고 올라갔겠죠. 그리고, 돌아가는 페리의 안에서 먹는 도시락까지 준비한다고. 아침도 점심도 준비하면 그것도 힘들꺼라고 말했지만, 「그래도, 하겠습니다!」라고. 와서 좋았다라고 생각해줬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강한거겠죠. 큰일이다라고 말하기 전에 하고 싶다라는 생각이 먼저 인거예요. 그런 것이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해서 말이죠.
마츠모토 : 섬의 많은 사람들이 떠받쳐줘서, 그것이 가능해가는 것이네요.
하 타 : 정말 성공해줬으면 좋겠어요.
마츠모토 : 무코야마상이 협력하려고 생각한 것은 어떻게 해서 인가요?
무코야마 : 그저께 저녁에, 고교생이 두 명, 우리 작업장에 불쑥 와서 「쌀 주세요」라고. 그걸로 어떡게든 대처하자라고. 이미 어떻게든 협력할 수 있으면 좋겠네 라는 마음뿐이예요. 또, 조금이라도 히토츠나기의 여행의 알맹이가 더 좋아졌다면 좋겠네라고. 지금의 고교생은, 우리들 시대와는 전혀 생활이 달라요. 그런걸 알아두지 않으면 말이지. 산이 있다는 것도 모르고, 산에서 난 것을 먹을 줄도 모르고. 우리들은 가을이 되면 산을 이리저리 분주하게 돌아다녔었어요. 그래서 산에서 나는 것이 간식이예요. 그렇게 커왔어요. 산에서도 마다에서도 모두 어릴 때부터 전부 기억하고 있는거예요. 하지만, 지금은 산에 가지도 않으니까, 도시와 다름없어요. 그러니까, 조금 지금의 아이들에게는 자신의 생활을 다시 바라봐줬으면도 싶을까나. 고등학교를 나오면 모두 섬 밖으로 나가버지. 하지만, 한번 나가는 것은 좋다고 생각해요. 한번 나가서, 도시의 혹독함을 알고, 다시 돌아와서 1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도 좋지 않을까라고 생각해요.
마츠모토 : 무코야마상도 한번, 아마를 나가셨었나요?
무코야마 : 아니 나가지 않았어. 계속 아마입니다. 장남이기 때문에 집에 남아라라도 들어서, 부모를 두고 나가는 것은 할 수 없었어요.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한번은 나가고 있네요.
하 타 : 여기의 좋은 점이라는 것은요, 한번 밖에 나가보고, 거기서 고향을 되돌아봤을 때 알 수 있습니다.
마츠모토 : 나갈 때는, 이 좋은 점을 느끼지 못했었나요?
하 타 : 빨리 나가고 싶었네요(웃음).
무코야마 : 모두 그렇죠. 그렇게 나가는 걸. 나도 생각해본 적 있지만, 부모를 내버려둘 수가 없어서……움직이지 않고 육십 몇 년, 여기에 있습니다.
무코야마상과 하타상의 말은, 마츠모토에게 깊게 깊게 새겨진 듯 합니다. 섬을 나가고 싶은 마음도, 돌아오고 싶은 마음도. 모두 진심으로, 어느 쪽이 정답이지도 틀린 것도 아니고 각각, 다른 방법과 타이밍으로 섬의 좋은 점을 눈치 챕니다. 아직 고교생이면서도, 섬의 좋은 점을 알아챈 그들은, 지금 「히토츠나기」에 어떻게 마주하고 있을까요? 그래서 거기서 얻은 것을 어떻게 표현해 갈것인가? 마츠모토는, 바로 수일 전까지는 전혀 연이 없었던 아마쵸의 미래를 확실히 명확하게 상상하고 있었습니다.
사진(상우) 멤버에게 (줄) 오미야게를 찾습니다.
사진(상좌) 마츠모토 스스로 아오야마상과 투샷 촬영.
사진(하좌) 이별의 종이테이프(別れの紙テープ)는 굉장히 예뻤습니다.
사진(하중) 신제잔 산업창출과장의 오에과장에게도 인사를.
사진(하우) 「서로 힘내자」라고 굳게 악수.
식사를 끝내고 페리 시간까지의 사이, 항에 있는 「킨냐모냐센터」에서 오미야게 찾기. 마츠모토는 무언가 생각이 난 듯 해서, 아오야마상에게 무언가를 상담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출항의 시간. 2일간, 정말 신세진 아오야마상도 여기서 이별. 다른 분야에서 열심인 같은 나이로서, 어젯밤 뜨겁게 이야기 나눈 두 사람. 꽉 굳게 악수를 나눕니다. 그리고, 아오야마상이 마츠모토에게 「하나짱으로부터」라고 빨간 봉투에 든 편지를 건네줍니다. 지금쯤, 하나짱과 고교생들은, 「히토츠나기 투어」에 분투하고 있을 터. 아마에서 만난 많은 사람들에게 배웅받으며, 페리에 승선. 관광협회의 모두와 종이테이프를 잡아당기면서의 이별은 굉장히 감동적으로, 단 2일동안이었지만 여러가지 추억이 머리를 스칩니다. 그리고 옆에서는, 이제부터 섬을 나가는 젊은 남자아이들이, 배웅을 와준 친구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습니다. 친구들이 항구에서 「하나~둘」로 목소리를 맞춰서 「힘내~!」라고 외치자 「어어! 열심히 하고 올게!」라고 큰소리로 답하는 남자아이. 그 모습을 보고 있으니 눈시울이 뜨거워 집니다. 드디어 배는 방향을 전환하고, 그 뒤로는 쭉 본토에. 선내에 돌아와 이 이틀간을 떠올립니다.
「꽤 그렇게 정들었네요. 가기 전에는, 그다지 친숙해질 수 없는게 아닐까? 라고 생각했어. 처음에 밥을 먹었을 때 아오야마군이나 하나짱과, 조금이라도 이야기하는 것이 가능해서였을까, 굉장히 좋았다라고 생각해. 정말 사람을 잇는 여행(ヒトツナギの旅)이라는 것을 느꼈네. 결국, 계속 사람과 만났었고 말야. 모두가 뭔가, 이런……진심인거네. 마지막에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던, 두 분도 그랬고. 부끄러워하는 것도 없이, 역시 아마가 좋으니까, 라며. 그걸 위해서 할 수 있는 것을 열심히 하고 싶다 라고 말하는 느낌이라든지. 죄우간, 어떻게든이라는 어중한간 느낌이 전혀 없었네. 그래서 친숙해질 수 있었다고 생각해. 도쿄가 불편하다는 이야기도 재밌었네. 거기에 아오야마군과 나도 만날 수 있어서 좋았네~. 그런 의미에서, 그와 하나짱의 두사람이 크네. 왠지 모르게 막연한 I턴이 많다 라든지, 그런 토픽적인 것이 아니라, 하나짱은 엄청나~! 라든지, 아오야마군 꽤 하네! 라든지, 그런 느낌이 진짜네. 도쿄가 불편하다라는 것도 그렇지만, 섬이 하나의 커뮤니티로, 너무 크지 않고. 딱 좋은 사이즈감이었다는 생각이 드네. 그 안에서, 만족함을 안다는 것이, 하나짱도 말했지만, 그 사이즈 안에서 가능한 것을 하려고 한다라는 느낌이 굉장히 리얼했고, 잘 전해져와서 감동했어. 좋은 마을이네」
무사히 페리는 시치루이항에 도착. 그대로 요나고 공항으로가, 도쿄로 돌아가는 마츠모토. 여기에 처음 내렸을 때와는, 분명히 다른 마츠모토의 충실한 모습은, 아마쵸의 사람들의 긍정적인 힘 덕분. 감사의 마음을 가슴 가득히, 마츠모토는 자기 나름의 「사람을 잇는」 여행을 이제부터도 계속해 갑니다. 아마의 여러분, 정말 감사했습니다.
의역 오역 많습니다,
출처 : そらまめ
후출처 : carpe
내용이 반복된 부분이 있었네요;;
수정했습니다.
사족 역자 주;;;
* 사실 ①때부터 각주를 달까 살짝 고민하다가 괄호 치고 살짝만 설명하며 넘어갔습니다.
따라서 들어가 있는 것 중 (웃음) 빼고는 이해를 돕기 위해 제가 넣은 것이니 원문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 고토바죠코(後鳥羽上皇) : 1180년부터 1239년까지 헤이안말기부터 가마쿠라 초기까지의 82대 일본 천황입니다.
세력이 점점 거대해지는 막부타도를 위해 조큐의 난(承久の乱)을 일으키지만, 막부가 승리하면서 유배당하게 됩니다.
이는 막부가 조정에 정치적인 우위를 점하게 되는 중요한 계기가 되는 사건이기도 합니다.
그냥 넘어가려고 했는데 이름과 유배당한 이야기가 계속 나와서, 누군지, 왜 유배를 갔는지 정도만 달아요.
*別れの紙テープ 이별의 종이테이프 : 헤어질 때 얇은 종이들을 배와 항구를 연결해서 배가 출발하면서 끊어지게 하는
그런 하나의 이별식에 사용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폭죽 속에 들어있는 종이들을 항구와 배에 잇는다고 생각하면 좋을 듯 합니다.
사진에서 실처럼 무언가 얽혀있는 것이 이 이별의 종이테이프입니다.
하지만, 쓰레기 문제 등으로 이별의 종이테이프를 사용하는 것이 금지된 항도 있다고 합니다;;;
우선 사진이 너무 예쁘고 그가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지가 궁금해서 한 해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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